[고베] 나루토에서 만난 서로 다른 운명의 폭스바겐 비틀

2011.02.13 22:16차고밖이야기/윤군 in 일본

간사이의 고베시로 여행을 갔으나 간사이보다 시코쿠에 더 오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츠카미술관과 우즈시오 때문인데 이 덕분에 두 대의 폭스바겐 비틀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뉴비틀이 아닌 '폭스바겐 타입1'을요.

한적한 공장지대 공터에 버려진 폭스바겐 타입1



나루토시에서 고베로 가는 고속버스는 30분에 한 대꼴입니다. 남는 시간 고속버스정류소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공장지대의 공터에서 폭스바겐 비틀을 발견하였습니다. 워낙에 독특한 바디 라인을 가지고 있으니 한눈에 딱 들어오더군요.

이쯤되면 폭스바겐 비틀의 과거를 살펴봐야겠죠?

흔히 비틀로 불리는 폭스바겐 타입1(Volks Wagen Type1)은 1938년 페르디난드 포르쉐 박사의 설계로 탄생하여 2003년까지 무려 2,000만대가 넘게 생산된 차종입니다. 단일 차종으로 가장 많이 만들어진 차이기도 하죠. 대량생산의 대명사인 포드 모델T도 경쟁이 안될 정도로 오랜 기간 세계 각지에서 생산되었습니다. 

엔진이 뒤에 있으므로 앞 후드 아래가 트렁크

1303S


그렇다고 바리에이션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버려진 이 폭스바겐 비틀만 해도 오리지널이 아니라 1972년에 선보인 '1303S'입니다. 어떻게 아냐구요? 제가 폭스바겐 비틀 전문가...라서가 아니라 뒤쪽에 네임플레이트가 달려있기 때문에 알 수 있었죠.

폭스바겐은 1970년대 초반 기존 타입1에 쓰이던 포르쉐 스타일의 토션바가 아닌 맥퍼슨 스트럿 서스펜션을 갖춘 1302, 1303 등의 바리에이션을 내놓았습니다.그러면서 동시에 외관도 바꾸었습니다. 하지만 그 변화가 극히 미미하기 때문에 단번에 알아보긴 어렵습니다. 후드 앞쪽의 모양이 미묘하게 바뀐 정도로 쉽게 구분할 수 있는 정도인데다 오랜 세월 만들어지고 수리되면서 다양한 변종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뒤쪽 후드의 에어 벤트가 2개에서 4개로 늘어난 것 정도가 눈으로 확연히 구분할 수 있는 변화입니다.

애프터마켓의 고무 빗물받이도 달려있습니다.

뒤쪽의 엔진도 그대로...



앞뒤 후드를 열어보니 트렁크에는 스페어 타이어도 그대로 있고 엔진도 그대로 실려 있었습니다. 혹시나 열어보니 문도 안잠겨 있고 실내에는 열쇠도 그대로였습니다. 물론 시동은 안걸렸죠. 시동이 걸린다한들 타이어도 없는 차로 어딜 가겠습니까...

정말 '정갈'한 실내

매력적인 스티어링휠

1970년대에 추가된 암레스트


일본의 유명 수입차전문딜러인 야나세가 1953년부터 1978년까지 비틀의 수입을 담당했었습니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수입된 차종이라 해도 1978년산입니다. 34년이 된 셈이죠. 30년이 넘은 차가 최근까지도 사용되다 버려져 그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버려지기엔 뭔가 아쉽다는 생각을 하며 길을 걷다 또 다른 비틀을 보았습니다. 이번에도 타입1이었지만 전혀 다른 모습이었죠. 

차고에서 고이 가꿔지고 있던 비틀

 
번호판까지 단, 반짝반짝 빛나는 폭스바겐 비틀이었습니다. 차고에 들어가있던지라 가까이 가서 볼 수는 없었지만 한눈에도 관리가 잘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인구 10만도 안되는 작은 도시인 나루토에도 이렇게 올드카를 관리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그리고 관리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본닛을 열어보지 않았으니 오리지널 엔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지 아니면 외형만 사용하는 레플리카인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예전 그 상태를 잘 유지하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일본은 1960년대부터 시행한 차고지증명제를 통해 차들이 '집'을 가지고 있고 그 집에서 여분의 부품들을 보유하고 수리하는 차고문화가 발달되어 있는 편입니다. 딜러들의 부품 보유도 잘 되어있을 뿐더라 개인간의 관련 거래도 활발하여 야후제팬의 옥션에서는 단종 모델의 부품을 어렵지 않게 구입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근처에서 본 폭스바겐 타입2 레플리카



같은 비틀임에도 한 대는 버려져 녹이 슬어 사라져가고 한대는 주인의 사랑을 받으며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멀리 떨어지지 않은 한동네에서 이런 두 대의 차가 있다는 것이 재미있더군요.

한편 근처에서는 폭스바겐 타입2 레플리카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폭스바겐 클래식의 인기는 여전한가 봅니다. 그러고보니 도쿄의 '프란지파니'같은 까페는 폭스바겐 버스가 통째로 가게 안에 자리잡고 있기도 하고 지유가오카 등지에서는 폭스바겐 타입2나 타입1을 활용한 가게들도 더러 있었죠.  

일본은 올드카 매니아들이 많고 이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딜러들도 많습니다. 비틀샵이라는 타입1과 타입2같은 올드비틀만을 취급하는 전문샵도 있습니다.

그저 차를 좋고 이쁘게 만들어 판매하는 것만이 자동차 산업의 전부는 아닐겁니다. 차를 통해 만들어지는 다양한 삶이 자동차 문화라는 측면에서 폭넓은 일본의 자동차 문화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살아있는, 그리고 죽어있는 딱정벌레를 통해서 말이죠.